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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퀴즈

다음 중 조선 선조 때에 송강 정철이 지은 작품이 아닌 것은? 사미인곡산중신곡 관동별곡

by 고객AS센터 2023.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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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조선 선조 때에 송강 정철이 지은 작품이 아닌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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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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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Pay 오늘의 문제는?

다음 중 조선 선조 때에 송강 정철이 지은 작품이 아닌 것은?

 

정답

사미인곡

산중신곡

관동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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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절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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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鄭澈, 1536년 12월 18일(음력 12월 6일) ~ 1594년 2월 7일(1593년 음력 12월 18일))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문신이자 정치인이며 학자, 작가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또는 迎日), 자는 계함(季涵)이고, 호는 송강(松江) · 칩암거사(蟄菴居士)이며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총마어사(驄馬御史), 동인백정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돈령부 판관(敦寧府 判官)을 지낸 정유침(鄭惟沉)의 아들이며, 인종의 후궁인 귀인 정씨의 남동생이다. 1562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의정부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인성부원군에 봉군되었다.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당시 국문을 주관하던 형관으로 사건 추국을 담당하였으며, 기축옥사 수사 지휘의 공로로 추충분의협책평난공신(推忠奮義恊策平難功臣) 2등관에 책록되었다. 훗날 심문 과정에서 동인에 대한 그의 처결이 지나치게 가혹하여 '동인백정'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동인들로부터 원한을 많이 샀다. 또한 서인의 정권 재장악을 위해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세자 건저문제(1591)를 계기로 귀양에 위리안치되었고, 임진왜란 직후 복귀하였다. 전란 초기에 양호체찰사 직을 수행하였으나, 알콜중독으로 업무를 소흘히하다가, 명나라에 사은사로 가서는 일본군이 철수했다는 가짜 정보를 올린 일로 사직하고 강화도에 우거하던 중 사망하였다.

당색으로는 서인의 지도자였고, 이이, 성혼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적으로는 송순 · 김인후 · 기대승(奇大升) · 임억령 · 양응정(梁應鼎)의 문인이다. 《관동별곡》(關東別曲) 등 가사와 한시를 지었으며, 당대 시조문학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시조의 윤선도와 함께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참조 : 위키백과

클릭시 위키백과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사미인곡

사미인곡(思美人曲)은 1588년(선조 21) 정철(鄭澈)이 지은 가사이다.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전체 126구이다. 음수율에서는 3·4조가 주조를 이루며, 2·4조, 3·3조, 4·4조, 5·5조, 5·3조 등도 나타난다. ≪송강집 松江集≫·≪송강가사 松江歌辭≫·≪문청공유사 文淸公遺詞≫ 등에 실려 전한다.

작자는 50세 되던 1585년 8월에 당쟁으로 인해 사헌부와 사간원의 논척을 받고, 고향인 전라도 창평(昌平)[1]에 우거한다. 이때 임금을 사모하는 정을 한 여인이 그 남편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마음에 기탁하여, 자신의 충절과 연군의 정을 고백한 작품[2]이 <사미인곡>[3]이다.

속편으로 속미인곡이 있다.

대한민국 60만 수험생의 뒷골브레이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에 등장했다. 앞선 6월 모평 때 정철의 관동별곡이 출제되어서 충격이 더 컸다.

*참조 : 나무위키

클릭시 나무위키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관동별곡

1580년(선조 13) 정월 작자가 45세 때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내 ·외 ·해금강(內外海金剛)과 관동팔경(關東八景) 등의 절승(絶勝)을 두루 유람한 후 그 도정(道程)과 산수 ·풍경 ·고사(故事) ·풍속 및 자신의 소감 등을 읊은 노래로, 조선시대 가사 가운데서도 대표작으로 손꼽을 만한 백미편(白眉篇)이다.

음률이 주로 3 ·4조로 이루어진 이 가사의 용어는 비교적 순수한 우리말이 많고, 비록 한문어휘라 하더라도 대개 우리말화한 것들이다. 또한 이 가사는 파란이 심하였던 작자의 관직생활에서 비교적 득의(得意)에 찼던 시절의 작품인 만큼 전체의 분위기가 웅장하고 명쾌하여 화려체의 문장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색이다. 특히 대구법(對句法)의 묘를 살리면서 감탄사를 적절하게 첩용(疊用)하고 생략법을 알맞게 구사하는 등 능란한 수법은 송강의 빼어난 문장의 경지를 남김 없이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전편(全篇)을 크게 4단(段)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제1단은 강원도 관찰사로 제수된 감격과 임지로 부임하는 모습을 엮은 서곡(序曲)이고, 제2단은 내금강의 절경을 읊은 노래이며, 제3단은 외금강 ·해금강과 관동팔경의 절경을 읊은 노래이며, 제4단은 작자의 풍류를 꿈 속에서 신선이 되어 달빛 아래 노니는 데 비유한 결구(結句)이다.

《송강가사》에 있는 가사의 첫 부분은 다음과 같다. “강호(江湖)에 병이 깁퍼 죽림(竹林)의 누엇더니, 관동(關東) 팔백리에 방면(方面)을 맛디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가디록 망극하다. 연추문(延秋門) 드리다라 경회남문(慶會南門) 바라보며, 하직(下直)고 물너나니 옥절(玉節)이 압패 셧다. 평구역(平邱驛) 말을 가라 흑수(黑水)로 도라드니, 섬강(蟾江)은 어듸메오 치악(雉岳)이 여긔로다. 소양강(昭陽江) 나린 믈이 어드러로 든단말고, 고신거국(孤臣去國)에 백발(白髮)도 하도할샤"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관동별곡 [關東別曲]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산중신곡

고산이 손수 쓴 필사본 가첩(歌帖) 《산중신곡(山中新曲)》이 전라남도 해남(海南)의 종가(宗家)에 전하고, 1798년(정조 22)에 재간된 작자의 시문집 《고산유고(孤山遺稿)》 권6 <하별집(下別集)> <가사(歌辭)> 편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시조들은 그가 56세 때인 1642년(인조 20)에 지은 것으로, 병자호란에 임금을 호종(扈從)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상도 영덕(盈德)에서 귀양살이하다가 풀려나와 전라남도 해남의 금쇄동(金鎖洞)의 자연 속에 묻혀 살던 때의 작품이다.

《만흥(漫興)》 6수, 《조무요(朝霧謠)》 1수, 《하우요(夏雨謠)》 2수, 《일모요(日暮謠)》 1수, 《야심요(夜深謠)》 1수, 《기세탄(饑歲歎:饑歲謠)》 1수, 《오우가(五友歌)》 6수, 《고금영(古琴詠)》 1수로 되어 있다. 《산중신곡》은 가첩에 19수가 적혀 있으나, 《고산유고》에는 《오우가》까지의 18수를 《산중신곡》에 넣고 《고금영》은 59세 때의 작품이라 하여 독립시켜 놓았다. 그러나 《고금영》은 자필본 가첩과 《고산유고》 권1의 49장에 따라 고산이 56세 때인 임오년 작품으로 보인다.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산중신곡 [山中新曲]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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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산중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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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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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오늘은 조선 선조 때에 송강 정철이 지은 작품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미인곡, 관동별곡 등등 좋은 작품이 많았습니다.

 

퀴즈에 참여해주신 분들 수고하셨어요! 내일도 유익한 정보가 있는 퀴즈로 찾아올게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